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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범근의 진실
    스포츠 2023. 2. 2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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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차범근의 병역문제와 이적과정
    이건 차범근 인터뷰를 보는 게 가장 좋긴 합니다만, 단순하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차범근이 20대 중반이 되어서 군대를 가기로 합니다.
    2) 차범근은 입대시기 문제로 공군을 지원하고 싶었고, 공군에서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차범근에게 특혜를 약속. 여기서 말한 특혜는 거창한 게 아니고, 복무기간이 좀 공군에서 타 군과 같은 시기에 전역시켜주겠다는 거였습니다.
    3) 차범근은 병역 끝났다고 생각하고 독일로 가서 다름슈타트와 계약을 맺은 뒤 데뷔전까지 뜁니다. 근데 공군에서 입장을 바꿔 병역 마저 채우라고 해서 계약파기 후 복귀해서 반년 가량 병역을 이행하게 됩니다.
    4) 이후 브레멘과 프랑크푸르트가 차범근을 노렸다고 하는데 차범근이 프랑크푸르트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공군이 뒤늦게 말을 바꾼 이유는 국보급 스타플레이어였던 차범근을 놓치는 게 국부유출로 인식되었던 당대 분위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실제로 차범근은 1978년 12월에 있었던 방콕 아시안게임 축구결승을 끝으로 국가대항전에 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986년 월드컵때 논란 속에서 복귀했고요.


    2. 차범근의 득점기록에 관해서
    그냥 까놓고 골 별로 못 넣은 거 맞습니다. 커리어 대부분을 중앙공격수로 보냈고, 특히 마지막시즌 빼면 미드필더는 잠깐 땜질 수준으로 했어요. 거기에 거의 모든 경기를 풀타임으로 뛰었고요. 그런 거 고려하면 포지션에 비해서 골을 많이 못 넣었다고 봐야죠. 후추 인터뷰였나, 거기서 차범근 부인인 오은미씨가 대놓고 차범근 보고 골 많이 넣는 타입 아니었다고 깨알같이 디스하는 내용이 있기도 하고요.

    국내에 알려져있는 차범근의 득점순위는 공동순위를 제외한 것으로 조금씩 높게 잡혀있습니다. 가령 데뷔시즌인 79/80시즌의 경우 7위로 알려져있는데 이건 공동이 있을 경우 1명으로 집계해서 매긴 순위입니다. 그래서 실제 기록으로는 12위고요.(사실 저렇게 집계해도 8위인데 왜 7위로 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PK 가지고 얘기가 나오는데 이건 나중에 차범근 본인이 스스로 못 차겠어서 거부했던 거라고 밝혔죠. 어차피 PK를 차는 선수는 몇 명 안 되는데 이거 가지고 보정할 필요도 없다고 보고요. 가령 예를 들어 차범근이 데뷔할 당시 리그에서 손꼽히는 공격수였던 흐루베쉬 같은 경우 PK를 찬 시즌보다 안 찬 시즌이 더 많습니다. 80년대 중반 독일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던 푈러는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까지 PK를 딱 1번 찼습니다.(말년에 레버쿠젠 와서는 좀 찼습니다.)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였던 루메니게도 커리어 통틀어 PK 4번 찼는데 PK 안 찼으니까 조금 더 골 많이 넣을 수 있었다고 고평가해야 한다고 하지는 않죠.

    사견을 덧붙이자면 차범근이 골을 많이 넣었니 못 넣었니 이런 걸로 싸우는 건 정말 쓸데없이 소모적인 일이라고 봅니다. 공격수는 골로 말한다고 하지만 골 많이 넣었다고 최고의 공격수가 되는 건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대런 벤트가 베르캄프보다 더 좋은 공격수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 이유가 골을 더 많이 넣었기 때문이라면 그 말을 하는 사람은 엄청난 비웃음을 당할 겁니다. 차범근이 윙이라서 골을 많이 넣은 게 맞다고, 그래서 세계적인 선수였다고 하는 것도 '골이 최고!'라는 인식에서 나온 거라고 보고요.


    3. 차범근의 포지션에 관해서
    키커 가보시면 차범근의 308경기 전경기 포메이션 제공합니다. 그거 일일이 확인하는 게 귀찮으면 차범근의 인터뷰를 보시면 됩니다. 차범근이 본인 입으로 센터포워드라고 말을 했거든요. 차범근이 미드필더였다, 혹은 윙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시즌은 마지막 시즌인 1988/89뿐입니다. 그 외에는 몇 경기 잠깐잠깐 섞어 나온 거죠. 재밌는 건 키커의 분류인데... 88/89시즌 평점순위를 보면 차범근을 공격수로 해놨습니다만 정작 그해 선수평가에서는 미드필더로 분류했다는 거죠. 참고로 포지션은 윙이 아니라 Mittelfeld Defensiv, 즉 수미로 해놨습니다. 중미가 아니라 수미인 이유는 키커가 선수 평가할 때 중미 개념 없이 모두 수미로 분류하기 때문이고요.

    차범근이 윙이라는 말이 나온 이유는 크게 둘입니다. 하나는 차범근이 국가대표에서 원래 윙으로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회택이 우리나라 주포로 뛸 때는 윙포워드로 뛴 걸로 유명하고요. 86월드컵에서도 팀이 최순호를 중심으로 짜여져있었기 때문에 차범근이 윙으로 나왔습니다. 이 덕분에 측면을 파는 플레이에 굉장히 탁월했는데 이를 보고 오해한 경우도 있지 않나 싶네요. 동영상으로 떠도는 차범근 경기가 한 6개 정도 되는데 하나같이 측면을 파괴시켜버리는 차범근을 볼 수 있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득점 문제죠. 차범근이 기록한 경기당 0.3득점 내외는 중앙공격수로 봤을 때는 저조한 수치지만 윙으로는 굉장히 좋은 기록이니까요. 근데 차범근이 윙이었으면 부인이 골 못 넣었다고 디스할 때 자기 공격수 아니라고 했겠지 루메니게 같은 애들이 골 잘 넣었다고 에둘러 말했겠어요?

    아 간혹 당대에는 윙포워드 개념이 없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차범근 친구로 알려진 리트바르스키라는 아주 좋은 케이스가 있기 때문에 말이 안 됩니다. 루메니게, 클라우스 알로프스, 리트바르스키 등이 중앙공격수와 측면공격수로 번갈아 뛰었다고 선수평가 따로 들어간 적도 있고요. 심지어 루메니게는 두 포지션 동시에 월드클래스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차범근은 새로운 플레이를 창조했다.' 같은 멘트는 뭐냐고요? 베켄바우어나 루메니게나 독일 축구원로들 립서비스 진짜 유명해요. 데미첼리스 보고 남미의 베켄바우어라고 했었는데요 뭘.


    4. 차범근의 평점에 관해서
    평점 진짜 무지하게 좋은 겁니다. 1위는 못 해봤어도 거의 매시즌 5위권에서 놀았고, 3위도 2번 해봤거든요. 득점이 별로 안 높은데도 평점이 좋은 이유는 역시 2가지입니다. 하나는 망한 경기가 없이 꾸준했다는 의미고, 다른 하나는 골을 안 넣어도 플레이가 좋다는 거죠. 00년대 중반에 유행했던 공격수 분류가 골을 잘 넣는 스코어러하고 골을 만드는 크랙형 뭐 이런 거였는데... 키커는 골만 잘 넣는다고 평점 안 줍니다. 찬스를 만들어내는 선수를 훨씬 좋아하죠. 04/05시즌 마카이가 아주 대표적인 예인데 22득점 14도움으로 득점 2위, 도움 1위, 공격포인트 1위를 기록했고 팀도 큰 차이로 우승했습니다만 본인의 평점은 공격수 11위에 그쳤고, 시즌 베스트11에도 못 들어갔습니다. 게르트 뮐러가 30골 넣고 공격수 평점 20등 안에 못든 적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차범근은 골은 많이 못 넣어도 경기력이 좋은 타입이었고, 그래서 키커가 점수를 후하게 줬던 거죠.

    근데 차범근 평점이 높다! 이러면 딸려나오는 게 전체 평점 순위입니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차범근 신격화를 막고 싶어서 까는 건 좋은데 좀 제대로 알고 깠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기본적으로 키커의 평점은 포지션끼리 묶어서 봐야 좋지, 전체 평점 순위로 선수 평가하는 건 별 의미가 없습니다. 미쳐 날뛰는 최상위권 선수들의 활약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아보기 위한 용도면 모를까요. 보통 키커는 골키퍼 > 수비수 > 미드필더 > 공격수 이 순서로 평점을 잘 주고, 특히 필드플레이어가 골키퍼보다 높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7관왕 시즌으로 유명한 05/06의 클로제가 골키퍼들 다 제끼고 엄청나게 낮은 평점으로 1위를 차지해서 대단하다고들 했던 거죠. 이후 리베리라든가 다른 선수들도 골키퍼 제끼면서 요새는 잘 언급이 안 되긴 합니다만.

    키커가 공격수에게 평점을 얼마나 짜게 주는지는 루메니게와 키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980년 발롱도르에서 루메니게는 만장일치에서 1위표 1장이 모자라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1981년에 2연패를 했고, 1979년에도 2위였고요. 즉 당대 유럽 최고의 슈퍼스타였다는 소리입니다. 그 루메니게의 78/79-79/80-80/81 시즌 평점 순위는 45-12-7위였습니다. 즉 발롱도르 먹을 때조차 톱5에 못 들었다는 소리죠. 키건이 77/78-78/79 2연패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14-2위로 끝내 1위는 못 먹었습니다. 79년도에 키건을 제치고 전체 평점 1위를 먹은 선수는 국대 백업으로 나오고 있던 중위권팀 브레멘의 수문장 부르덴스키였습니다.

    즉, 키커 평점을 논할 때 포지션을 무시해서 순위를 논한다는 건 굉장히 바보 같고, 키커 평점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경우라는 거죠. 그러니까 차범근을 까더라도 전체 평점 순위로 까는 건 바보 같은 일입니다. 이건 노파심에 덧붙이는 건데 차범근의 79/80시즌 평점 2.45가 지난시즌 토마스 뮐러의 평점 2.74보다 낮으니까 차범근의 활약상이 뮐러보다 좋았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저때는 정수 단위로 평점을 주고 그래서 지금보다 평균적으로 더 낮습니다. 절대적으로 비교하기도 어렵고요. 뭐 리베리가 찍은 2.10 정도 되면 이건 뭐 사람인가 싶긴 합니다만.


    5. 당시 차범근과 분데스리가의 위상에 관해서
    실질적인 데뷔시즌이라고 할 수 있는 79/80시즌 전반기에 차범근은 키커한테 Weltklasse, 그러니까 월드클래스를 받습니다. 카가와가 받았다던 그 월드클래스가 맞습니다. 후반기에는 인터내셔널로 내려갔고, 보통 전반기보다는 후반기를 더 자주 언급하긴 합니다만 어쨌든 데뷔하자마자 충격적인 임팩트를 주긴 했다는 거죠. 당시 오쿠데라가 최초의 아시아 선수로 뛰고 있었다고는 해도 동양인이 그렇게 뛴다는 거 자체가 충격적인 일이죠. 흑인 선수가 데뷔하기도 몇 년 전에 축구변방 아시아에서 온 양반이 폴짝폴짝 뛰어댕기고 백인애들 힘으로 밀어제끼고 있으니 오죽 신기하겠어요. 이 시즌만 잘 뛴 게 아니라 인터내셔널 몇 번 더 받아봤고, 지금까지도 분데스리가 역사상 손에 꼽을만한 용병입니다.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였냐고 하면 논란이 많겠지만요. 실제로 저번에 프랑크푸르트 베스트11 새로 뽑기 전까지는 레버쿠젠-프랑크푸르트 둘 다 베스트11 못 들어가기도 했고요. 대신 클럽에서 '우리팀에서 뛰었던 유명한 스타플레이어' 같은 거에선 절대 빠지지 않습니다. 레버쿠젠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역사 소개에도 차범근이 팀의 핵심이었다고 언급하고 있고요.

    80년대 분데스리가가 최고의 리그였냐는 물음에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대답하고 싶네요. 리그 순위에서는 80년대 중반까지 계속 1등이긴 했는데, 그와 별개로 돈 문제로 선수들이 하나둘 이탈리아로 모이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차범근이 막 독일에서 뛰던 80년대 초중반까지는 분데스리가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다가 이후 서서히 세리에로 헤게모니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사실 헤이젤만 아니었어도 잉글랜드가 독일을 제낄 수도 있었고요. 즉, 80년대 전반부는 독일이 계속 정점에 있던 시기이나 이후에는 내려오던 시기라는 거죠. 차범근은 80년대 내내 뛰었으니까 그걸 둘 다 겪었고요. 지금 라리가가 계속 포인트랭킹 정상에 있고 이러지만 돈 문제나 이런 걸로 EPL이 톱이라고 보는 시선이 많듯이 당시 분데스리가와 세리에A도 저랬다고 보시면 됩니다. 특히 남미 스타들이 이탈리아로 많이 몰리기도 했고요.


    6. 그외 트리비아
    1) 차범근의 회고라고 전부 맞지는 않습니다. 기억이란 게 왜곡되기 쉬워서 종종 오차가 나기도 해요. 가령 겔스도르프에게 살인태클을 당하고 큰 위기를 겪은 사실은 유명한데, 실제로 부상으로 못 나온 기간은 차범근의 기억과는 달리 1달밖에 안 됐어요.

    2) 차범근이 어시스트를 무지하게 많이 했다고는 하는데, 기록이 안 남아있어요. 키커가 어시스트를 집계하기 시작한 건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푸스발다텐 같은 경우 하필 80년대 어시스트 기록이 없습니다. 차범근 녹화중계가 방송국 창고에 있을지는 몰라도 인터넷상에 떠도는 건 몇 경기 안 되기 때문에 그래서 이건 미궁인 걸로.

    3) 차범근 독일 국대 귀화추진은 그냥 와전이라고 차범근 본인이 밝힌 바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귀화했어도 주전은 장담 못 했을 거고요. 당시 독일이 월드컵 3연속 결승 진출하던 시기거든요. 그때 뛰던 공격수만 해도 루메니게, 푈러, 리트바르스키, 피셔, 흐루베쉬, 알로프스 등이고 독일이 뽑느라 고민하던 건 3번째, 4번째 공격수였지 주전공격수 문제가 아니었죠.

    4) 키커가 몇 년 전에 과거 기록을 전부 열람하게 해주기도 했고, 독일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차범근 관련 정보도 많이 풀리긴 했는데 여전히 잘못 떠도는 것도 많습니다. 가령 차범근이 해트트릭을 몇 번 했다든가, 밀란한테 뭘 했다든가 뭐 이런 건데 이런 거 틀린 게 대부분이에요. 실제로 차범근은 독일에서 해트트릭을 한 적이 없고, 손흥민이 최초고... UEFA컵 결승에서 차범근이 마테우스를 따돌리고 어시스트를 했다든가... 이런 것도 사실과는 다르고요.

    5) 차범근의 A매치 승률은 70%가 넘습니다. 경기수 한참 차이 나는 최순호를 제외하면 근접하는 이도 없어요. 독일 안 가고 은퇴했다고 가정해도 이미 레전드. 다만 월드컵 예선에서 호주한테 계속 잡히기도 했고 비아시아팀을 상대로는 딱히 전적이 좋지 않았습니다.(사실 최순호가 정말 괴물인 걸지도요. 우루과이, 체코랑 비기고 나이지리아, 가나, 미국을 잡았으니)

    6) 차두리가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하자 차범근의 아들이 왔다고 독일언론 메인을 장식한 적이 있습니다.

    7) 차범근의 주간 베스트11 횟수는 30회가 넘고, 시즌 베스트11에 2번 오른 바 있습니다.(요 시즌 베스트11은 키커 주간 베스트11 횟수로 정합니다.)

    8) 차범근이 독일 외국인 최다 득점 기록을 갱신한 건 맞는데 일반적으로 알려진 발롱도르 위너 알란 시몬센이 아니라 네덜란드의 빌리 립펜스의 기록이었습니다. 립펜스는 독일 출생이기도 했고, 별로 유명한 선수가 아니어서 사람들이 잘 모르더군요.

    9) 차범근이 성공하자 여러 선수들이 독일로 갔는데, 줄줄이 다 망했습니다. 국가대표급 선수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아시아 씹어먹던 김주성까지. 황선홍도 독일에선 2부리그에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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