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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베트남의 공산화를 막기위해 싸운 군인들
    군대 2021. 7. 2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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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년, 미군이 철수한 베트남에서 북베트남군은 1년간의 휴전 끝에 적화통일 최종계획안 '호치민 작전'을 펼침.

    남베트남은 미국의 지원으로 100만의 군대와 세계 4위의 군사장비 대국이 됐지만, 싸울 의지 자체가 전무하여 속절없이 쭉쭉 밀림.

    애초에 일선 지휘관들이 부하들 냅두고 헬기 타고 도망치고, 참모총장이라는 사람은 수송기 타고 미국으로 런하는 나라였음. 

    그리고 그해 4월 30일, 마침내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이 함락 당함.

     

     

    현재까지도 남베트남군은 당나라군대의 대표적 케이스로 알려져 있지만, 그 중에서도 최후까지 나라를 위해 싸운 소수의 군인들이 존재했음.

    그중의 일부를 소개함.

    트란 반 히엔(Trần Văn  Hiến) 중위

    남베트남 공군 AC-119 건쉽 파일럿.

     

     

    당시 남베트남 정부는 귀중한 인재인 공군 파일럿들을 북베트남에게 넘겨주기 싫어서 파일럿들에게 기체를 몰고 태국이나 필리핀으로 망명하라는 명령을 내림.

     

    이에 히엔 중위는 탈출을 거부하고 자신의 부하 몇명과 함께 4월 30일 최후의 이륙을 감행, 밀려오는 북베트남군 지상병력에게 40mm 기관포탄을 퍼부으며 항전. 결국 수많은 대공포탄과 대공미사일에 피격당해 부하들과 함께 전사.(기관포 사수 한명이 낙하산 탈출을 시도했으나 꼬리날개에 걸려 실패함.)

    이를 본 518 비행대대 소속 트룽 풍(trung Phúc) 대위와 푹(Phúc) 중위도 자신들의 기체인 스카이레이더 전폭기(A-1 Skyraider)를 몰고 북베트남군에게 항공폭탄을 퍼부음.

     

    수차례의 출격 끝에 트룽 풍 대위는 결국 대공포화에 격추 당해 전사했고, 푹 중위는 끝까지 살아남았으나 마침내 지상정비 대원들마저 도망가자 하는 수 없이 혼자서 기체를 재급유하고선 태국으로 망명.

    판 반 후안(Phan Văn Huấn) 대령

    남베트남 육군 제81 공수레인저 전투단 지휘관.

     

     

    정예부대인 남베트남 레인저 부대를 이끌고 90mm무반동포와 대전차 로켓으로 북베트남군의 전차들을 격파해가며 사이공이 함락 당하는 그 순간까지 싸움.

    그리고 항복 명령이 내려오자, 남은 부하 2000명과 함께 가장 가까운 북베트남군 부대를 찾아감.

     

    이 때 북베트남군들이 군복을 벗으라고 강요하자, "우린 수년동안 이걸 입고 나라를 위해 싸웠다. 무기를 버릴 순 있지만 이 군복만은 벗을 수 없다. 만약 강제로 벗기겠다면 우린 전원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항변함.

    결국 기가 질린 북베트남군들은 레인저부대한테 군복을 입도록 허용해 줌.

     

    이후 포로가 되어서도 "내 부하들은 죄가 없다. 이들은 그저 내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모든 결정을 내가 내렸고 난 처벌 받을 준비가 됐다."고 부하들을 변호 해주었고, 지휘관 신분으로 체포되어 약식 재판 끝에 총살. 

    (비단 이 부대 뿐만 아니라 남베트남 레인저들은 즉결처형 당하거나 포로 수용소에서 몇배는 힘들게 생활했다고 함.)

    레반 흥(Lê Văn Hưng) 준장

    남베트남 육군 4군단 부사령관

     

     

    본래 장교였으나 1972년 미군 철수 후 벌어진 북베트남군의 공세를 잘 막아내는 활약을 펼쳐 장군으로 승진.

     

    1975년 부족한 병력과 장비를 가지고 악전고투를 벌이며 북베트남군을 막아냄. 나중에는 부하들과 함께 메콩강 삼각주에서 게릴라전을 펼칠 계획까지 세움.
    하지만 결국 4월 30일 항복소식을 듣고선 좌절하며 부하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한 뒤 

    "나라를 지키지 못한 군인이 택할 것은 죽음 밖에 없다"

    라는 유언을 남기고 권총으로 자결.

    레민다오(Lê Minh Đảo) 소장

    남베트남 육군 18사단 지휘관.

     

     

    가톨릭교도 집안에서 태어나 베트남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 미국 포트베닝 연수까지 다녀온 엘리트. 부정부패와 스파이가 판 치던 남베트남군에서도 올곧으며 뇌물을 받지 않던 인물이었음. 

    당시 그가 지휘하던 18사단은 2선급 부대로 제일 못싸운다고 소문났던 부대였음. 
    레민다오는 이 5천여명의 부대를 데리고 남부의 요충지 쑤안록(Xuân Lộc)을 방어하며 전차연대가 포함된 4만의 북베트남군을 5일 동안 막아냄. 
    예상치 못한 18사단의 선전에 큰 피해를 본 북베트남이 10만의 증원병력을 투입하여 압박을 가하자 결국 잔존병력을 데리고 사이공으로 후퇴함.

    이후 4월 30일, 부하들과 사이공에서 최후의 항전을 하던 중 남베트남 정부로부터 항복하라는 전문이 내려오자 무전기에 대고 눈물을 흘리며 부하들에게 전투를 중지하라고 명령함.
    그리고 북베트남군 사령부에 스스로 출두하여 체포됨.

     

    그리고 쑤안록 전투에서 열심히 싸웠다는 괘씸죄 하나만으로 하노이 감옥에서 17년 동안 수감생활을 한 끝에 1993년, 미국으로 망명을 허락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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