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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족의 지도자 김구 선생님
    역사 2022. 4. 27.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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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6년 8월 29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김구 선생은 독립을 위해 다양한 애국계몽활동을 펼쳤습니다.

    서명의숙, 양산학교 교사와 보강학교 교장 등을 지내며 교육에 힘을 쏟았고, 최광옥과 함께 해서교육총회를 조직, 학무총감에 추대되어 각 군을 돌며 계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10년 신민회에 가입하여 구국운동을 전개하다 징역 2년 형을 받았으며, 안명근 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기도 했지요.

    *안명근 사건: 1910년 안명근 등이 황해도 신천에서 무관학교의 설립자금을 모집하다가 민병찬의 밀고로 체포된 사건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선생은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에 임명됩니다.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좌측), 일왕을 처단하기 위해 일본에 도착한 이봉창의사 상황을 김구 선생에게 알리기 위해 쓴 편지(우측)

    1931년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조직한 한인애국단을 맡아 일왕 처단(이봉창), 일본군 장성 및 고관 폭살(윤봉길), 조선총독 처단(이덕주, 유진식), 관동군사령관 처단(유상근, 최흥식) 등을 지휘했습니다.

    1933년에는 장제스 총통을 만나 한인청년들을 장교로 육성하는 길을 열었는데요, 낙양군관학교에 한인무관양성소를 만들고 만주에서 독립전쟁을 벌이던 이청천, 이범석, 오광선 등을 초빙하여 장교 양성에 주력했습니다.

    한국독립당 중앙 집행위원

    1940년 선생은 한국독립당의 집행위원장, 광복군 통수권자, 임시정부 국무위원회의 주석이 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굳건히 지키고 조국의 광복을 위해 활약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환국(좌측)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자 우리나라로 돌아와 통일국가 수립을 위해 애쓰시던 선생은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안두희의 흉탄에 서거하였습니다.
    선생의 유해는 온 국민의 애도 속에 국민장으로 치러져, 효창공원에 안장되었습니다.

    효창공원 안에 있는 백범 김구 기념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정부는 김구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습니다.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 『백범일지』 ‘나의 소원’ 중 -

    김구 선생님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했던 겨레의 큰 스승,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님을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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